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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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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의 추억 2 ◎ 슬프고 짜증났던 상황 1. 신문배달을 하면서 가장 짜증나는 때가 태풍이 불때였다. 비오는 것도 싫었지만 태풍은 강풍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로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신문을 접어서 비닐에 껴놓은채로 배달하게 되는데 모든 신문을 그렇게 하진 않는다. 비로 인해 꼭 신문이 젖을 수 밖에 없는 집에만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그냥 자전거 바구니에 신문을 통채로 비닐로 덮은채로 담는다. (아파트나 실내로 배달하는 곳이 그러하다) 어느 태풍날, 거의 배달이 완료되고 20여부정도 남았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경향신문 보급소에 배달할 때였다. (각 신문 보급소마다 다른 신문들이 배달되곤 한다.) 엄청난 강풍이 불고 있었고 난 자전거를 그 보급소 앞에 세워놓고 신문 한부를 들고 보..
신문배달의 추억 1 어릴적 X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그 시절.. 난 배달의 기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때까지 신문배달을 했다. 내 두 동생들은 그보다 더 어릴때 신문배달을 했다. 물론 가정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 철이 들지 못했을 때였으니까. 다만 동네 아이들이 한꺼번에 시작했던 일이였다. 그만큼 우리동네는 모두가 가난했다. 그렇게 재미로 시작했던 일이 우리 부모님께는 꽤 도움이 되었었던 모양이다.(나중에야 알았지만) 난 한겨레신문 보급소로 갔다. 당초에 세계일보 보급소로 갔으나 이미 다른 아이들이 선점을 해서 다른 보급소를 찾다가 한겨레로 간 것이다. 내가 제일 어렸다.(당시 11세) 나에게 배정된 부수는 80여부. 급여는 한달에 25,000원이였고 일주일에 하루 쉬었다. 보통..
대박예감 : 아웃사이더 2집 - 마에스트로 6월 1일 발매된 아웃사이더 2집 앨범. 이번 앨범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힙합을 좋아하는 팬으로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아웃사이더(신옥철)를 처음 알게 된 것은 MC Sniper 4집 앨범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의 빠른 속사포 랩은 나에겐 충격이였고 곧 그에게 빠져들었다. 스나이퍼(김정유)가 4집을 발매하고 얼마후 지인을 통해 스나이퍼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1집때부터 꾸준히 그의 팬이였던 나로서는 새벽까지 그와 술을 마시며 보냈던 시간들이 꿈만 같았고 더욱이 그 날 이후 또다시 그를 부천의 한 곱창집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아웃사이더가 동행해 있었다. 아웃사이더를 처음 보았던 느낌은 M/V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물론 나보다 5살 어린 친구였기도 했지만 그 수수한..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꿈을 향해 뛰는 자를 위해 우주는 모든 것을 허락한다. 지금 이순간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꿈꾸고 있는가 아니면 달리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지난 한주간 여러분은 무엇을 했나? 대부분은 톱니바퀴같은 하루를 그냥 그냥 흘려보냈으리라 대부분은 월급날이 오는 것만을 기다리며 인터넷을 하며 보냈으리라 대부분은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거나 몸을 흔드는 것에 하루를 보냈으리라 뭐 이런 것도 괜찮다. 그것도 나름대로 하루를 보내는 훌륭한 방법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사람과 같은 방법으로는 다른사람보다 나은 삶은 절.대.로 될 수 없다. 그래서 당신들은 말한다 사람들 사는 것은 모두 똑같다고.. 그러나 당신들은 모른다. 그 누군가들에게는 당신..
건축 지망생 혹은 재학생을 위한 선배들의 피가되고 살이되는 이야기 나는 고3중반까지 의대 지망생이였다. 의대에 대한 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단 한번의 외도 선언 외에는 단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때부터 해부학 책자를 들여다 보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때에도 화학, 물리, 생물공부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를 통해 알게된 한 건축사분을 통해 들은 이 말 한마디가 내 진로를 바꾸었다. "건축은 도시의 꽃이다." 당시에는 이 말이 얼마나 멋있게 들렸는지 모른다. 불행히도 그 당시(IMF이전) 건축관련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었고 건설경기가 활황이였기에 의대 다음으로 들어가기 힘든곳이 건축학과였다. 새하얀 도화지에 내가 디자인하는 건물을 그려보는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인간의 배를 ..
자취의 추억12 - 애완동물 이야기 이번편에서는 우리형제가 자취를 하는 동안에 키웠던 애완동물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앞 '자취의 추억4 - 이름모를 강아지를 하늘로 보내다' 편에서도 말했듯이 내 동생은 동물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인간들을 싫어하고 그 외의 다른 생명체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둘째 우현이는 인간이란 종족은 그렇게 폭력으로 다스리더니 식물, 동물, 자연등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끼고 보살피는 것을 보자면 분명 전생에 동물이나 식물.. 그것도 아니면 광물 뭐 그런 비스무리한 것이였으리라.. (인간에 의해 죽어간.. 나는 고릴라였다고 확신하지만) 여튼 가끔 같이 티브이를 보고 있자면 자연다큐를 자주보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밀렵꾼 이야기라든지 밀렵꾼을 체포하는 사람들이야기만 나오면 완전 흥분한 고릴라가 ..
단지, 화분을 키우고 싶었다. 2008년 1월 서울로 발령이 났다.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서울근무였기에 난 너무 기대가 되었다. 건설현장근무라 1년에도 몇번씩 지방여러곳을 옮겨다녀야 하는 저주받은 업무환경중에서도 이 서울근무는 공사기간이 2년정도 되다보니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생활이 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2008년 2월 회사에서 지방에 거주지가 있는 자를 위하여 현장근처에 숙소로 사용하는 아파트를 얻어주었다. 이 35평짜리 아파트는 방이 3개이고 화장실이 2개 주방과 거실이 있는 훌륭한 곳이였다. 이 곳에 직원이 4명이 쓰기로 했고 각각 1인당 방 하나씩을 쓸수 있었다. 그 동안은 숙소에 들어오는 직원들이 많아서 개인방을 써본적이 없었기에 혼자 방을 쓴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래서 이삿짐을 풀어놓고서는 방을 꾸미기 ..
여러분은 언제부터 산타(Santa)를 믿지 않으셨나요? 저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4~5학년때까지 믿었던거 같습니다. 간혹 친구들이 산타는 없는거라고 해도 전 그 친구들을 믿지 않았죠. 그때까지 한번도 선물을 받아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에 굴뚝이 없어서 그런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양말을 걸어두었습니다. 그러나 굴뚝이 없는 다른 친구들도 선물을 받는 것을 보고는 전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였기 때문에 선물을 못받는다고 생각했고 더욱 더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선물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선물을 못받는 이유는 내가 걸어놓은 양말이 구멍이 났거나 구멍난 양말을 몇번이고 꿰메어 놓은 지저분한 것이라 산타가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에게 새 양말을 사달라고 그것도 선물이 많이 들어가게 목이 긴 양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