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 때도 서울에서 살지 않았을 때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 창덕궁, 창경궁이였습니다. 이상하죠? 경복궁은 몇 차례 가봤었는데 저 두 궁궐을 가볼 생각을 안했다는 것이요. 얼마전 북촌에 갈 일이 있어 들렀다가 창덕궁이 있는 것을 보고 눈도장을 찍은 뒤 그 다음주 창덕궁을 들렀습니다. 표를 발권하려 했는데 후원 투어가 따로 있더군요. 후원은 말 그대로 뒤에 있는 공원입니다. 비원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왜냐하면 이 후원은 조선시대 왕들의 비밀별장 같은 곳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이번에 보지 않으면 한동안 이 곳을 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때문에 가이드투어를 신청했습니다. 외국어 버전을 피해 한국어로 가이드를 해주는 시간에 맞췄습니다. 역시 좀 늦은 시간이였지만 다음으로 미루기에는 너무 날씨가 좋았어요. 한 50명 정도가 함께 투어했는데 각 건물마다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우 보람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각 건물에 대한 역사 이야기는 생소할 뿐 아니라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창덕궁은 창덕궁 나름대로 아름다운 곳이고 후원은 비밀의 정원답게 한국의 미를 뽐내는 곳이였습니다.
후원으로 가는 길을 따라 2~3분 걸어가서 맨처음 만난 곳은 부용지와 주합루였습니다.
1. 부용지와 주합루
<부용지와 주합루>
<부용정>
이곳은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곳입니다. 300평(약 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었는데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과거시험을 치르던 곳. 마지막 과거시험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주합루는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창건한 2층 누각이라고 합니다.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도서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열람실 겸 누마루로 만들었습니다. ‘규장각’이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奎宿)가 빛나는 집’이란 뜻이고, ‘주합루’란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란 뜻입니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주합루로 오르는 정문이 ‘어수문’이 있습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긴 문으로,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을 보여 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2. 영화당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 를 둔 특이한 건물입니다.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과거시험을 볼 때 이 영화당에서 왕이 그 모습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영화당>
3. 불로문 / 의두합 / 애련정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그 섬은 남아있지 않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는 형상입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애련지라는 연못이 되었습니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원래 이곳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고1827년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습니다. 현재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입니다.
<불로문>
<의두합>
<애련정>
4. 관람정
우리나라 유일의 부채꼴 모양 정자입니다. 건물의 일부가 물에 떠있는 형상입니다.
5. 존덕정
1644년(인조 22)에 지어진 존덕정은 처음에는 육면정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이 건물과 이어진 다리 남쪽에 시간을 재는 일영대(日影臺)가 있었다고 합니다. 존덕정은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붕이 두 개인데요. 바깥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웠습니다. 존덕정 천장 중앙에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6. 폄우사
폄우사는 건물의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활쏘기를 연마하며 군자의 덕을 닦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폄우사에서 느낀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정조의 '폄우사사영(폄우사四詠)'이 <궁궐지>를 통해 전해지는 것으로 볼 때, 적어도 1800년 이전에 이미 폄우사가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순조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공부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6. 승재정
승재정은 관람정 맞은편에 있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에다 겹처마인 사못지붕을 한 작고 간결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칸마다 창호를 달았으며 살창이 독특한 문양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승재정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조선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7. 옥류천 일원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는 작은 천(川)입니다.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고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입니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漪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입니다. 특히,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淸漪亭)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는 지금 남아있는 궁궐안의 유인한 초가건물입니다.
<농산정>
<소요정>
<소요암>
<태극정>
<청의정>
비원의 더 많은 곳을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지면의 한계도 있고 직접 보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미 창덕궁 후원에 대한 소개를 마치려고 합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시크릿가든 비원에 대한 가이드 투어 한번 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모르던 사실을 많이 배울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을 만들어 줄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가진 자연과 인공건축물들에 대한 조화로움에 눈이 즐거우실 거에요. 이 곳은 계절별로 한번 와보고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