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과잉시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는 고등학교에서 산업의 발달 단계에 대해 배웠습니다. 1차 산업은 농업 및 축산, 어업 업종이 주를 이루고 2차 산업은 공산품 생산 업종이 주를 이루며 3차 산업은 서비스 산업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형태는 2차 산업인데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장차 3차 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이 말씀이 얼마나 단편적인 내용만을 열거하신 것인가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저는 3차 산업인 서비스 분야가 국가의 부를 가져다 주는 줄로만 알았습니다.(요즘은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대한민국은 서비스 산업과 IT 산업의 발달을 도모했습니다. 얼마 지나자 서비스에 대한 얘기들이 주를 이룹니다. 서비스 산업 뿐 아니라 모든 업종에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까지 중요시 되었습니다. 식당에서도 종업원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고, 식료품 파는 마트나 옷을 파는 가게에서도 ‘서비스’는 매출을 올려주는 중요한 경영기법이 되어 가고 있었죠. 이것이 IT와 연계되자 그 파급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업들의 방침은 어느덧 서비스 과잉 시대를 낳고 있었습니다. 서비스가 좋으면 좋을수록 좋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 많은 부작용을 낳는 듯 합니다.
기업도 공범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물건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것이 종업원들에 대한 인격까지 구입할 수 있다라고 하는 생각들이 있나 봅니다. 종업원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자신의 지위를 논하며 종업원들의 무릎을 꿇게 한다거나 손찌검을 하는 사례도 여러 번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었죠. 문제는 이런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들도 자신의 종업원들에게 같은 것을 요구합니다. 손님에게 대들지 말고 항상 웃고 있어야 하며, 잘못했다라는 말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킵니다. 백화점에 가면 매장 직원들은 의자에도 앉지 못하게 하잖아요. 거의 몸종 다루듯이 종업원들을 대하는 것은 고객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기업은 고객들의 생각에 반응하여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객들이 그런 서비스를 원하니 자신의 종업원들에게도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종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여튼 종업원들에게 서비스 과잉을 요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기업도 공범입니다. 고객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자신도 어느 집단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일 것이 분명한데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 되면 흔히 말하는 ‘갑질’을 하게 되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그 심보를 잘 모르겠습니다. 당한만큼 돌려준다라는 생각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지금 대한민국은 서비스 과잉으로 인해 종업원을 하나의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닌 자신이 받아야 할 서비스 중 하나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잉서비스는 낮은 인건비의 반증
사실 우리나라의 서비스는 좀 과해요. 외국에 나가보면(특히,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들을 가보면) 정말 서비스에 실망하실 겁니다. 호텔이나 식당을 이용해봐도 우리나라에서 받았던 만큼의 서비스를 받기 힘들 겁니다. 외국업체들이 완전 불친절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과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살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이런 곳 가면 서비스 좋습니다. 제가 살았던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일단 종업원 수가 많아요.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죠. 그래서 손님이 뭘 직접 하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수많은 베트남 직원들이 다 수발을 들어주거든요. 베트남에서 제가 느꼈던 것이 서비스는 결국 인건비와 관련이 있는 것이고 인건비는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대우이므로 결국 과잉 서비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대우 혹은 존엄성를 갉아먹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였습니다. 논리적 연계성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경험적으로 어느정도 합당한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좋은 인건비를 받은 종업원이 훌륭한 서비스를 펼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고객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법입니다. 어떠한 권리로 우리가 서비스 종업원들에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상대방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곧 나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객이 변해야 변한다
일단 고객이 변해야 합니다. 내 돈의 가치는 내가 받는 재화나 서비스(=용역)을 교환하는 것까지이고 종업원들의 인격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 경계점을 지키는 것 또한 고객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죠. 내가 제대로된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면 거기에 대한 항의만 하면 되는 것이지 항의라는 단어 내에 인격모독이 포함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고객의 태도만을 지켜보던 기업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기업도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임은 너무 자명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