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물리학 스타 아인슈타인 말년은 어땠을까
과학이나 물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낳은 가장 뛰어난 천재이자 스타였던 아인슈타인은 젊은 나이에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일약 물리학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으로 인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뉴턴의 역학 체계가 깨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런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말년을 보냈고 어떻게 생을 마무리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년은 참 불행했다는 사실 아시나요? 아인슈타인의 삶과 노력, 믿음에 대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시공간을 창조해낸 20대 청년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 후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교사가 되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특허청에서 근무하는 중에도 과학적 사유를 계속했었고 20대 중반이었던 아인슈타인은 1905년 6월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특수상대성이론
이 논문에는 특수상대성이론이 선보인 것으로 이 논문 하나로 기존 뉴턴과 갈릴레이 중심의 시공간 체계를 모두 폐기처분시켰습니다. 1905년 이전에는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역학만으로 우주의 모든 것들을 설명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명성도 자자했던 많은 물리학자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제 자연의 기본원리는 대부분 분명하게 밝혀졌다.”
앨버트 마이컬슨
“이제 물리학에 남은 일은 기존 측정값들의 소수점 이하 자릿수를 늘려가는 것뿐이다.”
켈빈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발표하기 10년 전부터 ‘빛 속도의 상대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 왔습니다. 기존 물리학 체계에서는 빛의 속도로 달리는 관측자에게 빛은 정지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맥스웰의 방정식에 따르면 절대 빛은 정지해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모순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적 속도에서 절대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고 변하는 것은 시간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엄청난 파격이었습니다. 당시로는 시간은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속도 공식
v(속도) = d(거리) / t(시간)
에서 빛 속도와 이동한 거리가 불변이면 시간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0년 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로써 고전물리학과는 영원히 결별하게 됩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력’ 하면 뉴턴이 떠오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만들어 낸 게 뉴턴입니다. 뉴턴의 이론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죠. 뉴턴은 빛과 같은 속도, 천체와 같은 중력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삶 속의 일반 물체의 움직임은 뉴턴의 방정식만으로도 대략 설명이 가능하지만, 우주 단위로 나가게 되면 오차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오차를 잡아준 것이 상대성이론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우리는 시공간의 개념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뉴턴이 말했듯 두 개의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은 중력은 두 중량을 가진 물체가 공간을 휘어지게 함으로써 영향을 받는 것임을 증명해 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나중에 실험을 통해서도 아주 정교하게 들어맞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용하는 GPS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하여 만든 정교한 위치 정보 시스템입니다. 기존 고전역학으로는 GPS를 통해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합니다.
이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은 일약 스타가 됩니다.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물리학 천재의 탄생이었습니다.
말년이 불행했던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고전물리학 체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어떤 천체 현상도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명성이 극에 달하던 그때 양자역학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우주, 별, 은하와 같은 천체의 운동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원자, 전자와 같은 미립자들의 운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양자역학은 수학을 앞세워 그 체계를 단단히 세워나갔습니다.
양자역학은 우리의 인식체계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 입자가 파동 형태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있으면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이중 슬릿 실험’
- 관찰이라는 행위로 인해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지 못한다는 ‘불확정성의 원리’
- 입자의 존재는 확률로 존재한다는 ‘파동 함수’
- 아무리 멀리 떨어진 입자라도 곧바로 스핀 정보를 교환한다는 ‘양자 얽힘 현상’
등이 그렇습니다.
이를 아인슈타인은 결코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론들이었습니다. 양자역학을 주장하는 자들과 아인슈타인의 논쟁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되었고 실험적으로도 결함이 없었습니다. 매우 정확한 이론이었습니다.
우주는 우리의 이해 따위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 매우 노력하였습니다. 1935년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 로젠 세 사람은 양자역학에 반박하기 위해 ERP 역설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후에 ERP역설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양자역학이 더 타당하다는 실험 결과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20세기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양립하면서 오게 됩니다.
죽을 때까지 통일장 이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끝내 양자역학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반박할수록 양자역학이 옳다는 것만 증명해주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최종적으로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기 위해 생애 마지막 30년을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아인슈타인은 통일장 이론을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말년은 물리학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30년을 연구만 하다가 양자역학이 빛을 발하는 것만을 보면서 물리학계의 변방에 머물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가졌던 명성에 비해 초라한 말년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가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길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양자역학과 같은 해괴망측한 무질서가 우주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낭만주의자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