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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정보

외국여행가서 그랩에 핸드폰을 두고 내렸을 때

외국에서 그랩 이용시 핸드폰을 두고 내렸던 경험

오랜만에 떠난 해외여행에서 겪은 일입니다. 아내와 함께 떠나는 정말 오랜만의 해외여행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여행 몇 주 전부터 산책을 앞둔 강아지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저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여행을 갔습니다.


동남아 여행 자주 다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교통수단으로 그랩(GRAB)만한게 없습니다. 괜히 택시 탔다가 요금 바가지에 실랑이 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가 맞네 틀리네 기사와 싸울 필요도 없으며 차를 잡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는 "여행자들을 위한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가 그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몇달씩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그랩을 이용했었습니다. 말레이시아라고 다를 이유는 없었죠. 다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그랩에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는 것 말고는 말이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쉽게 겪을 수도 없는 일을 제가 겪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이용했던 그랩(GRAB)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던 일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그랩택시 핸드폰


1. 사건의 발단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밤 10시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서 호텔로 이동하여 바로 자고 다음날 아침부터 말레이시아를 폴짝폴짝 뛰어다녀야겠다고 화려한 여행계획을 나노 초 단위로 세워둔 상태였습니다. 이미 동남아에 너무 최적화되었던 우리 부부는 자주 이용했었던 그랩 앱(app)을 이용해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동남아에서는 그랩이 최고입니다. 저렴하고 안전합니다. 그랩 만든 사람 상 줘야 합니다.



말레이시아에 도착 후 입국 심사와 짐을 찾는 아주 단조로운 일들을 지나 공항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척 그랩 앱을 켜고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줄 차를 호출했습니다. 그랩은 내 현재 위치(Pick up point)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요금이 책정되고 차량이 배정됩니다. 카카오택시와 비슷합니다. 그랩 호출 후 10여분 후에 그 문제의 그랩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랩(Grab)을 기다리던 공항 앞


2. 사건의 전개

공항과 저희가 묵을 호텔은 차로 1시간 거리였습니다. 그랩을 타고 자연스럽게 그랩기사와 인사를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고 목적지로 출발하였습니다. 이 때만 해도 외국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한지 10분이 지날 때쯤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그랩

▲ 그랩을 타고 막 출발하던 중


그랩 앱에 목적지를 잘못 입력했던 것입니다. 아내가 그랩 앱에 목적지를 입력할 때 호텔명을 키워드로 검색했는데 같은 호텔 이름을 가진 다른 지역을 목적지로 설정했던 것입니다. 아내가 이 사실을 나에게 말하자 저는 열심히 운전하고 있던 그랩 기사에게 이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나만큼이나 그 그랩 기사도 영어를 잘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제가 당시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wrong destination"만 외쳤던 것 같습니다. 저의 외침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어찌어찌 서로 대화가 통하고 있었으나 그랩기사는 목적지를 변경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랩 정책상 원래 목적지로 일단은 가야 한다는 융통성 없는 답만 되풀이 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단은 그 wrong destination으로 나의 그랩은 향해 달려갔습니다.


▲ 말레이시아에서의 쿠킹클래스


3. 사건의 위기

곧 자정에 다다르던 시간 융통성 1도 없던 우리의 그랩은 잘못된 주소지에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그리곤 다시 출발하자고 말하는데 안된답니다. 새로 예약하랍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랩 앱을 켜고 원래 목적지를 입력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잽싸게 근처에 있던 다른 그랩이 저의 콜을 받습니다. 우리의 그랩 기사님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그걸 타랍니다. 내리랍니다.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랩 기사님은 새로운 그랩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겠답니다. 그 친절함에 반해버리기도 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 10분이 지나고 새로운 그랩이 왔습니다. 10분동안 함께 기다려 준 예전 기사님과 기쁜 마음으로 bye~ bye 인사를 하고 새로운 그랩에 올라탔습니다. 잠깐 인사해보니 이 기사님도 영어를 잘 못합니다.(그랩 기사분들 대부분이 중국어를 쓰는 듯 했습니다.)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고 막 출발하려고 할 때, 저는 소름이 끼치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 핸드폰!'


주머니에 핸드폰이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차에서 뛰어나갔습니다. 0.01초 동안 뉴런을 굴려본 결과 이전 그랩 차에 두고 내린 것이 확실했습니다. 밖으로 나갔지만 그 융통성 없었던 그랩 기사의 차는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그랩에 올라타는 그 10초도 안되는 시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다시 서둘러 아내에게 갔습니다. 아내의 핸드폰에 있는 그랩 앱을 이용했으므로 내 핸드폰을 싣고 가고 있는 그랩 기사와 연락이 닿을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새로 온 그랩 기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다음, 잠시 그 자리에서 기다리며 앱을 뒤졌습니다.


주머니에서 빠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전 그랩 기사와 연락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랩 정책상 기사와 손님이 직접 만나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랩 대단한 회사입니다. 망연자실해 있는 나를 보며 그 착한 새로운 그랩 기사님은 분실물은 고객센터에 연락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기사분께서 직접 그랩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주었습니다.



4. 사건의 절정

기사분은 20여 분째 출발도 하지 않고 나를 위해 그랩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상황 설명을 해줬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중국어를 많이 사용하는듯합니다. 중국어로 고객센터에 얘기하더니 저를 바꿔줍니다. 그렇게 그랩 고객센터와의 Opic시험(영어 말하기 듣기 평가)과 같은 시간이 시작 되었습니다.



사람이 다급해지니 영어가 어떻게든 들리고 어떻게든 말이 나오더라구요.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린 것 같습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경위와 내 핸드폰에 대한 묘사,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 연락받을 수 있는 이메일에 대해 알려주고는 끊었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못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다시 찾을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내와 저는 서로 자책하며 일단 그랩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새로 오신 그랩 기사님은 저 때문에 거의 40~50분을 기다려주었던 것입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 친절하다고들 하던데 진짜 친절합니다. 자기일처럼 도와줍니다. 그렇게 우울하게 40분 이상을 달려 우리가 예약한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2시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진즉에 호텔에 도착해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하면서도 전혀 신나지가 않았습니다.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만 저희를 보고 환하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이게 저의 말레이시아 여행 첫날이었습니다.


방으로 올라가 씻고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올리 만무했습니다. 새벽 4시. 아내와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끓여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습니다. 배가 따스하니 잠이 옵디다.


▲ 새벽, 그 호텔


5. 사건의 결말

늦게 잠들었지만 일찍 일어났습니다. 잠시 자는 동안 핸드폰 잃어버린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깨도 꿈 속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우울하게 말레이시아의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계속 우울해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호텔 루프탑 수영장을 갔습니다. 아내라도 즐거우라고 즐거운 흉내를 내었습니다.


▲ 아내가 가고 싶어했던 그 수영장


아내는 수영을 했고 저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이후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략 30분가량 수영장에서 머물다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샤워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차, 아내 핸드폰으로 메일 알람이 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랩 고객센터에서 온 메일이었습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메일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랩 고객센터 메일


그렇습니다. 그랩 고객센터는 제가 탔던 그랩 기사에게 연락을 했고 그 그랩 기사는 자신의 차 뒷좌석에서 제 핸드폰을 발견했음을 고객센터에게 전했고 메일에 써진 임시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면 그랩 기사가 원하는 장소로 내 핸드폰을 가져다주겠다는 내용입니다.



말레이시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영원히 말레이시아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꺅 소리를 지르며 온갖 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고 즉시 호텔 로비 프런트 데스크로 갔습니다. 호텔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저 대신 그랩 기사에게 전화를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흔쾌히 그 직원분은 수락해 주셨고 그랩 기사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합니다. 15분 후 그랩 기사가 도착할 것이다 라구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연신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착하게 살면 그게 적립되어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저도 어리둥절했습니다. "와. 이거 뭐지?"


저는 미어캣마냥 호텔 로비에서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15분 후 그랩 기사 차가 보입니다. 저는 드디어 제 핸드폰과 그 그랩 기사님을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랩 고객센터는 그랩 기사에게 이동하는 요금(one-way charge)을 지불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보다 몇 배 많은 돈을 감사한 마음을 담아 드렸습니다.



저는 말레이시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의 경험 외에도 여행 중에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친절함을 느꼈던 경험들이 많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여행 첫날은 지옥 같았다가 그랩과 그랩 기사들의 도움으로 다음날부터 여행 끝날 때까지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 이렇게 글로 옮겨 봅니다.



여러분도 만일 해외에서 그랩을 이용하던 중에 핸드폰을 두고 내리셨다면 주저말고 고객센터로 전화를 하세요. 제가 알기론 그 방법밖에 없을 듯 합니다. 혹시 알아요 저처럼 이렇게 기적처럼 해결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랩(GRAB)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