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블롬캠프의 새 영화 채피.
이 감독의 영화가 기다려졌던 이유는 그의 과거 영화인, 2009년 개봉했던 '디스트릭트 9'이 나에게는 큰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였다. 또 '엘리시움'도 있었지 않은가. 사실 엘리시움은 실망을 금치 못했었지만..
채피는 인공지능을 갖게 된 한 경찰 로봇의 이야기이다. 성장기까지라고는 말하기 좀 그렇다. 하지만 차별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큰 틀에서의 성장이라고 하면 그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채피는 처음 인공지능을 프로그램되고 나서 갓 태어난 아이와 같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하지만 갱들의 가르침으로 저질스러운 단어를 쓰고 행동을 한다. 하지만 설계자인 디온이 채피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려한다. 여기서 채피는 갱들에게서 배운 것보다 도덕적이고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을 더 선호함을 알 수 있다. 모든 지능을 가진 존재는 아마도 성선설을 따르지 않나 싶다.
<출처 : "채피" DAUM 영화>
이 영화의 핵심은 채피가 읽게 된 동화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채피가 읽는 책에서 나오는 '검은양'은 남들과는 (겉모습이) 다른 어떤 존재를 상징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 검은양은 다른 존재보다 순수하고 선의적으로 묘사된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만 결국 모든 공동체가 본받아야 할 존재는 그 '다른 존재들'이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닐 블롬캠프의 영화에는 이런 차별이 가장 큰 소재가 되고 있다. '디스트릭트 9'에서는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차별을 그리고 외계인이 된 지구인의 모습을 통해 차별은 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었고 '엘리시움'에서는 1%의 선택받은 자들과 99%의 버려진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차별받는 자들이 그 차별을 부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채피에서도 그런 차별이 보인다. 인공지능과 마음을 가진 로봇이 인간들과의 '겉모습 차이'로 차별 받고 존중받지 못하지만 인간 또한 겉모습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그 내면은 유지된다면 그 존재를 '무엇'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리고 감독이 모든 영화에서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은 늘 불편하다. '디스트릭트 9'에서 나온 외계인 수용소와 '엘리시움'의 쓰레기가 넘치고 오염된 지구. 이번 영화 채피에서 보여주는 범죄우발지역인 '요하네스버그'의 모습들은 앞서 말한 차별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늘 우울하고 너저분하고 무채색이다. 그런 디스토피아적 세상은 영화를 계속 우울하게 만드는데 공조한다. 채피도 그런 공간의 느낌과 몰인간적인 차별로 인해 우울함과 슬픔,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그래서 아내는 이 영화를 보며 울컥울컥한다고 했다.
<출처 : "디스트릭트 9" DAUM 영화>
<출처 : "엘리시움" DAUM 영화>
하지만, 결국 차별받는 존재들은 그 존재의 참모습을 깨닫고 늘 투쟁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 투쟁은 나름 성공적이다. 누구든 차별받아서는 안되며, 차별이 존재한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 동원하여 차별의 벽을 깨부숴야 함을 알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