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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 에세이

삶의 무게

두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한 친구가 밖에서 들어오는데 인상을 찌푸리면서 쩔둑거리며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야야..."

자리에 앉더니 양말을 벗어제끼고 발을 만지작거리면서 쓰읍거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방에 있던 다른 친구가 이상하게 여기며 묻는다.

"왜그래? 어디 다쳤어?"

"아... 아까 친구들이랑 농구를 했는데 누가 점프하다가 내 발을 밟았거든.. 그때부터 계속 욱씬거리더라고.."

발을 보니 발가락이 부어오른게 발가락이 부러진듯했다.

"이거 병원가봐야겠네... 이시간에 병원여는 곳이 있나?"

"내일 한번 가보지 뭐.. 아.. 진짜 부러졌나보네... 아 씨 짜증나.."

그리고 두 친구는 그렇게 밤을 보낸다.

발가락이 부러진 친구는 쉽게 걷지를 못해 다른친구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한 친구는 그 심부름을 군말없이 해주었다. 심지어 화장실 갈때도 부축을 해주었다.

그런데 발가락이 부러진 친구가 가만히 보니 다른 친구가 방구석에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친구도 발을 부여잡고 뭘 열심히 하고 있다. 일단은 자신의 고통이 점점 커졌기에 금방 다른 친구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TV를 보다가 무심코 말한다.

"야, 저기 리모콘 좀 줘봐"

시간이 좀 지나도 리모콘을 가져다 주질 않자, 다시한번

"야, 리모콘 좀 이리 던져줘보라고~"

말하며 짜증을 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버럭 화를 낸다.

"그 정도는 니가 해 임마!!"

어이가 없었다. 난 발가락이 부러진것 같아 걷지도 못하는데 그정도도 못해준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과연 이 놈이 내 친구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이다. 정말 진짜 어려울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더니 서럽기까지 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그 친구는 나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높인다.

"너도 발 다쳤지만 나도 아까부터 발에 가시가 박혀서 5시간째 빼지도 못하고 있다고! 너는 나한테 관심이나 있냐? 너 아픈것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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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의 팔이 부러진 것보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법이다.'

절대공감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의 사정을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가슴속까지 받아들일수 있을 때는 내가 여유가 있을 때이다. 일단 무엇인가 나를 고통주고 있는 것이 있다면 타인의 고통은 금새 무시되기 마련이다. 그 고통의 크기에 상관없이 말이다. 
위에서 등장한 두 친구도 마찬가지다.
발가락이 부러진 친구는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해지게 되며, 가시가 박힌 친구는 다른 친구의 고통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가 야속하기만 하고 자신도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시박힌 고통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어깨위에 삶의 무게를 짊어진다.
어느 누군가는 솜 한봉지를 짊어질수도 있고 쇳덩어리를 짊어질수도 있다.
다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어깨위의 삶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생각한다.

'난 다른사람들보다 더 불행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다 잘되는데 나만 안되는 것 같아'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찾아들까'

이런 고민들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타주의는 높은 정신적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아무리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 있더라도 잠시만 옆을 돌아보아 어깨위의 삶의 무게로 인해 버둥거리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여유를 갖도록하자. '여유'라는 이름의 새한마리가 여러분의 어깨위로 날아와 당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같이 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