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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대화

신문배달의 추억 1

 어릴적 X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그 시절.. 난 배달의 기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때까지 신문배달을 했다. 내 두 동생들은 그보다 더 어릴때 신문배달을 했다. 물론 가정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 철이 들지 못했을 때였으니까. 다만 동네 아이들이 한꺼번에 시작했던 일이였다. 그만큼 우리동네는 모두가 가난했다. 그렇게 재미로 시작했던 일이 우리 부모님께는 꽤 도움이 되었었던 모양이다.(나중에야 알았지만) 난 한겨레신문 보급소로 갔다. 당초에 세계일보 보급소로 갔으나 이미 다른 아이들이 선점을 해서 다른 보급소를 찾다가 한겨레로 간 것이다. 내가 제일 어렸다.(당시 11세) 나에게 배정된 부수는 80여부. 급여는 한달에 25,000원이였고 일주일에 하루 쉬었다.

 보통 보급소로 신문이 날라들어오는때는 새벽 1시~3시 사이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신문의 속지가 따로 분리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 배달민족들이 모든 신문의 속지를 끼워넣어야 한다. 그리고 광고지도 끼워넣어야 한다. 비가 올적이면 더욱 죽음이다. 비닐봉지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선배들의 속지와 광고지를 끼워야 한다. 그래서 새벽 3시반이면 보급소에 도착해서 손가락에 불이나도록 속지와 광고지를 끼워대고 선배들이 배달하는 부수만큼 분배하여 둔다. 그럼 나중에 선배들이 도착해서 그것을 들고 나간다. 그리고 내가 제일 나중에 나간다. 그때가 보통 새벽 4시반~5시 사이이다. 80부정도는 아주 적은 수에 속했기 때문에 배달시간은 1시간정도면 된다. 이 일을 한 1년쯤 하게되면 신문에 속지와 광고지를 끼워넣는 손이 보이질 않게 된다. 그것도 기계가 끼워넣는 것보다 더욱 정밀하고 반듯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신문을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내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일명 '코스'를 외우질 못해서 무진장 고생을 했다. 소장님이 3~4일 데리고 다녀 길을 익히게 하지만 나중에 나 혼자 배달을 할 때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서 빼먹은 집도 많고 안보는 집도 넣고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된다.(그러면 다음날 된통 혼이 난다.)

 비가 오는 날이 제일 싫었다. 신문을 비닐봉지에 넣는 것이 싫었고(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사고가 많이 나서 싫었다.(빗길에 넘어지기 일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무냄새가 작렬하는 비옷을 입기가 싫었다.

80부로 시작해서 최고 700부까지 돌려봤다. 한 4년을 하다보니 어느순간 자전거에서 한번도 내리지 않고(아파트를 제외하고) 배달이 가능한 순간도 맛봤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경험하였고 이제부터 그 순간들을 잠시 회상해 보고자 한다. 



◎ 무서웠던 상황

1. 내가 돌렸던 코스에는 '남원의료원'이 포함되어 있었다.-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한- 그리고 불행히도 지하 기계실과 기계실을 지나 있는 영안실에 신문을 넣어야 했고 2층에 수술실에도 직접 신문을 넣어야 했다.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서 그런지 매일 영안실과 수술실을 거치는데도 헛것도 많이 보고 헛소리도 잘 들었다.
어느날, 새벽 4시반 여느때와 같이 의료원에 들어와서 출입구를 향해 자전거를 몰던 중 - 당시 병원이 건물 한동을 새로 신축하고 있어서 공사판였다. - 공사판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주위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건축자재를 어지럽게 쌓아놓은 곳에 하얀 물체가 보였다. 누군가 뭘 줍는것 같았다. 내가 볼때는 허리를 숙여 뭘 줍는 자세였기 때문에 엉덩이만 보였는데 그 사람을 지나 좌측으로 꺽어 들어간 후에 뒷통수가 간지러워 뒤를 돌아본 순간!!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난 다시 앞을 보고 냅따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서 봤던 그 사람은 똑바로 서서 좌로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머리는 긴 산발이였고 흰소복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완전 하얗다. 얼굴이고 복장이고... 그 사람이 날 보고 씩 웃는데 눈은 푹꺼져서 보이질 않았고 입은 빨갛고 길게 찢어져 있었다. 이 때를 포함해서 총 3번을 귀신을 보았다.

2. 새로 배정된 코스중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 출몰하던 미친개가 있었다. 셰퍼트종이였다. 덩치가 당시 중1였던 나보다 컸고 학생들은 등교때마다 이놈의 개때문에 피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그 미친개를 키우던 집이 한겨레신문 구독자였다. 그 집은 단독주택이였는데 대문에 신문을 넣으려나 하면 개가 미친듯이 짖어댔다. 그리고 문을 들이받는다. 대문 밑으로  그 큰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흘렸다.
어느날, 그 집에 신문을 넣으려는데 개가 짖질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대문으로 접근했는데(평소때는 30M밖에서도 날 알아보고 짖기 시작한다) 이런 대문이 열려있다. -_-
신문을 던져놓고 뒤를 돌아본 순간, 골목 중간에서 그 악마개가 날 보고 있었다. 씩 웃는것만 같았다.(정말 그런 기분이였다.) 그리고는 날 향해 그 개새끼가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 큰 이빨을 드러내며..... 난 냅따 자전거를 잡았지만 이내 자전거를 놓고 골목길을 뛰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 진짜 나를 쫒아오는 것이다. 나는 완전 겁을 먹고 어느 골목으로 뛰어 들어 갔는데  젠장할 막다른 골목이였다. 휙 뒤를 돌아봤는데 골목입구를 막고 그 악마가 서서 으르렁거렸다. 눈을 깔면 죽는다는 생각에 몸은 바들바들 떨면서 개를 똑바로 노려봤다. 30초간 대치하고 있다가 그 악마가 힐끗 흘겨보며 물러났다. 난 땀으로 온 몸이 범벅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후로 다시는 그 개가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