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부터 휴가였습니다. 바쁜 회사일로 인해 짧은 휴가이지만 휴가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기쁨을 주는 것인지요. 딱히 갈 곳은 없었습니다. 그냥 서울을 떠나지 않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유유자적함을 경험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유유자적하기에는 이번 폭염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집안에서도 에어컨을 수차례 껐다 켜야만 했고 선풍기는 단 한차례 쉼도 없이 그 날개를 '부왕~'하며 돌려대야 했습니다. 요즘 전기요금 누진세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저 또한 현행 전기요금 체계에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었지요. 하지만 더위 앞에서는 '누진세고 나발이고 에어컨을 틀자~' 라고 외치게 됩니다.
휴가 기간 내내 동선이 건물안으로 들어가게 되더라구요. 차를 타고 이동해서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했고 잠시 밖으로 나와보면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 정수리부터 눈, 코, 볼을 순서대로 땟찌! 땟찌! 하면서 못된 강아지 궁딩이 때리는 것 마냥 햇살로 내리쳤습니다.
밖을 나가기가 무서운 날씨입니다. 빌딩숲을 거닐면 모든 차들과 모든 건물의 실외기에서 뜨거운 바람을 내뿜습니다. 다만, 길을 걸었을 뿐인데 너무 쉽게 지치게 됩니다. 열섬현상이라고 하죠. 숨쉬기도 어려운 더위로 술자리에서 화장실 가듯 수차례 커피숍을 찾아 얼음가득 담긴 설탕덩이리 물들을 입안으로 밀어넣기 바빠지죠.
어제 토요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을 보고 서점에 잠시 들려 책을 한권 사들고 난 후 이 이후는 딱히 할일이 없었습니다. 이 더위에 어딜 나가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주차장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내가 제안을 합니다.
"남한산성 가서 땀이나 쭉 빼고 올까?"
처음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했습니다. 자신 생일날 왜 그런 고행을 찾아서 하려고 하는지.... 이 발언은 거의 자해수준의 발언인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제겐 없었고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한산성에서 등산을 하다보면 찌뿌둥한 몸뚱아리에도 변화가 생기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그러자라고 말하고 차를 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남한산성까지는 꽤 가깝습니다. 그래서 자주 가던 곳이었죠. 보통은 밤에 자주 갔습니다. 밤에 산성위에서 잠실제2롯데월드를 비롯한 송파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지요. 낮에 가는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야간에 볼 수 있는 경관>
야간과 달리 주간에는 주차장을 이용해야겠더라구요. 1000원을 주고 주차를 합니다. 살짝 배가 고픈 듯 하여 주차장 앞에 있는 GS25편의점에서 아내와 함께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고 밖으로 나서는데 여전히 뜨거운 햇살이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바람이 도시에서 느끼던 그런 끈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사이들을 피해 내 귓볼과 목에 흐르는 땀방울을 날려보내주었습니다.
주차장 주변으로 등산로 입구까지 수없이 피어있는 맥문동이 반겨줍니다.
<곳곳에 피어있는 맥문동>
그 순간 여기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저는 침괘정에 들렀습니다. 침괘정에서는 관광객들의 체험프로그램 같은 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군사훈련(?) 같은 것을 받는데 국궁체험같은 것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여기 침괘정만 와도 큰 나무가 만들어놓은 그늘 아래가 시원해서 움직이기가 싫어질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수어장대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남한산성이나 그리 등산하기 어려운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평소 운동부족으로 뱃살을 키워내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는 참으로 힘겨운 곳이 되어버렸지요. 헥헥 거리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길 20여분. 많이 보던 산성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는 몸뚱이는 땀을 쏟아내고 있었고 허파는 산소를 달라며 아우성입니다. 겨우 20분 올라왔는데 말이지요. 수어장대 앞 휴식공간에서 잠시 앉아있었습니다. 햇빛만 피한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더라구요. 확실히 도시가 열섬현상으로 인해 많이 더운 것 같습니다. 아내와 이 곳에서 포토타임을 가졌습니다. 누가누가 더 좋은 사진 찍나 겨루는 장 같았어요. 요즘 '푸디'라는 사진 앱에 꽂혀서 푸디로만 사진을 찍는데 정말 폰카가 위대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맑은 날씨도 한 몫 했지요.
<아내의 사진>
<남편의 사진>
남한산성위에 오르니 공기질도 틀린 것 같아요. 쉼쉬는 것이 아래 도심에 있을 때와 사뭇 다릅니다. 도심에 있을 때는 푹푹찐다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이 곳에서는 와~ 여름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의 차이였습니다.
우리는 곧 산을 내려왔습니다. 올라올 때는 그렇게도 헥헥거리며 왔는데 내려가는 길은 그리도 빠르고 쾌적합니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아까 찾아던 GS25에 다시 들렀습니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기 위해서였는데 아내가 참 좋은 것을 찾아냅니다. 요거 완전 맛있습니다.
얼음까지 포함해서 1000원밖에 안해요.
시원하고 달달하고 ^^
이젠 열섬으로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더운 날 산을 찾는 이유가 아마도 오늘 우리가 느낀 그 시원함이 함께 해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더운 하루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