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3중반까지 의대 지망생이였다. 의대에 대한 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단 한번의 외도 선언 외에는 단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때부터 해부학 책자를 들여다 보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때에도 화학, 물리, 생물공부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를 통해 알게된 한 건축사분을 통해 들은 이 말 한마디가 내 진로를 바꾸었다.
"건축은 도시의 꽃이다."
당시에는 이 말이 얼마나 멋있게 들렸는지 모른다. 불행히도 그 당시(IMF이전) 건축관련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었고 건설경기가 활황이였기에 의대 다음으로 들어가기 힘든곳이 건축학과였다. 새하얀 도화지에 내가 디자인하는 건물을 그려보는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인간의 배를 가르는 잔혹한 의사의 모습보다 훌륭했다. 그래서 난 건축과를 진학했다.
그리고
바로 IMF가 터졌다.
나도 몰랐다. 건축과를 가면 아래 사진처럼 보일줄만 알았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정우성이 건축가로 나온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픽 하고 웃었다.
1. 디자인을 하고 싶어?!
건축과에 진학하는 학생의 85%이상은 저 옆의 정우성이 되고 싶어한다. 멋드러진 그림을 그리고 디자이너의 칭호를 듣고 싶어서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입학을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린 정우성이 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우성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현실은 무엇인가....
일단 스스로 사고의 수준이 무지하게 낮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건축을 포함한 여러분야의 디자인이라는게 절대 기술적이 스킬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취약하며 빈약한 논리로 만든 점, 선, 면 또한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자학하게 된다. 공부하다보면 얼마나 광범위한 분야(예술, 역사, 공학, 인문, 사회, 종교, 철학, 등등....)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지 입학할 당시는 몰랐을게다. 그리고 공부하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브루주아 학문'이라고 불렀다.) 거기다 성과도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가 되는 해석에 콧방귀를 뀔 날이 올 것이다.
좀 시간이 지나보면 선배들을 통해 이 건축설계라는게 돈도 안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껏해야 설계사무실 입사하는 것이 설계를 지속할 수 있는 취업전략이다. 이 설계사무실이라는게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디자이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한다. 늘 야간 작업이 있고 연봉은 턱없이 작고 입사하고 1년간은 화장실 배치만 CAD로 그리는 도면치기만 하게 된다. 스케치? 웃기지 마시라 그건 나중에 취미로나 하시라... 실시설계도면 CAD로 그리는 것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다. 발주처가 설계도면 납품일정을 단축하고 독촉을 해오게 되면 밤낮으로 일해야 한다. 그래도 좀 짬밥이 되면 나도 멋진 설계를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 할 시간에 영업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자기계발에 힘쓰기 바란다. 설계사무실 5년차 정도 되면 영업을 하러 다녀야 한다. 결국 설계사무실도 수주를 해와야 먹고 사는 구조이기 때문에 접대를 다녀야 하고 인허가와 관련된 공무원과의 유대관계도 돈독히 해야 한다. 영업능력이 연봉과도 직결된다.(이것을 못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학교 다닐때도 올빼미 생활을 하면서 살았는데 취업을 해서도 박봉에 올빼미 생활을 지속해야 하고 후임이 좀 생길만하면 사장은 오더 따오라고 등을 떠민다. 학교다닐때 학우들과 밤새 토론했던 mass, 대지의 컨셉, 빛과 노출 콘크리트의 철학적 의미는 없다. 건축주가 원하는 건물을 최대한 용적률을 맞춰 제품(?)을 제출해줘야 밥먹고 살 수 있다.
2. 시공을 배우면 좋아요?!
학교다닐때는 설계하는 사람들 보다는 좀 편하다. 뭐 별로 공부할게 없다. 올빼미 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단 중요한 것은 건축기사를 취득하는 것이고 학점 관리를 해야하고 토익공부도 열심히 해야한다. 일단 다른 취업자들과 같은 과정을 밟아간다. 그래야 대기업 건설회사에 취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회사는 연봉이 높다. 일단 먹고사는 것에는 훌륭한 직업이나 별을 보고 출근하고 별보고 퇴근하는 날이 많아지게 된다. 노가다는 저녁 6시면 땡하고 퇴근한다고 하는데 그건 작업자들 얘기고 직원은 밤에 남아 산더미 같은 잔업을 해야 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학교다닐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많이 배웠다고 하는데 현장에 가면 전혀 감을 못잡는다. 일단 용어부터가 배운것과 다르다.(일반적으로 아직도 현장에서는 일본어가 많이 사용이 된다.) 그리고 늘 험한 작업자들과 부대끼게 된다. 화려한 직장인의 로맨스 따위는 기대하지도 마라.(본사 직원은 다를수 있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군대같이 규율이 엄격하다. 군대처럼 안전모(철모)쓰고, 안전벨트(X-반도)차고 안전화(군화)신고 일한다. 총대신 삽을 들 뿐이다. 상사의 명령은 엄격하다. 가끔 민원인들이나 주변 건달들과도 전투를 치루어야 한다. 납품일정(준공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현재 시공되는 건물의 시공성 검토라든지 구조적 검토는 할 시간이 없다. 오늘 타설하기로 한 공구리 일정 소화하기도 바쁘다. 그렇게 한 현장을 끝내면 웅장한 건물의 모습에 뿌듯할 것이다. 그리고 곧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 떠돌이 생활이 이 직업의 가장 큰 단점이다. 본사에서 가라면 군소리 말고 섬으로라도 가야 한다.
3. 그래도 하고 싶어?!
그래도 건축과를 가고 싶거나 건축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학교다닐때 정말 많은 책들을 봐두도록 하시라, 그리고 답사를 다닐 일이 있으면 무조건 다녀와라, 또한, 시공을 무시하지 말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워둬라.(특히 역학, 재료학, 시공학) 마지막으로 절대 꿈을 포기 하지 마라. 결국에 여러분은 그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라는 칭호 혹은 '디자이너~'의 칭호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공을 하시는 분은 전공외의 공부를 해두어야 한다. 특히 경제, 경영은 필수이다. 기술적인 내용으로 학창시절에 목매지마라. 아무것도 몰라도 현장에서 1년만 있으면 다 배운다. 현장에서 근무하게 되면 군대와 비슷하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기 힘들다. 늘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특히나 경제, 경영, 디자인에 대한 능력은 훗날 여러분을 날게해줄 추진체가 되어 줄 것이다.
지금도 건축을 천직으로 생각하시고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께는 제 글이 언짢으실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너무 허황된 모습을 그리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게 안타까운 마음에
이러한 글을 쓴 것이니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