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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부천 세 자매, 송파 세 모녀 자살로 생각해 본 국가의 복지란 무엇인가

오늘 부천에 사는 세 자매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뉴스 기사 발췌>

"A(33·여)씨와 B(31·여)씨는 이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C(29·여)씨는 이 아파트 12층 자신의 집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사는 게 힘들다. 화장해서 뿌려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실직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이 뉴스를 보며 많은 분들이 지난해 송파 세모녀의 자살사건은 떠올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송파 세모녀의 자살사건은 현재 대한민국이 얼마나 복지 사각지대가 많은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였고 이로 인해 정치권들도 현실과 맞지 않는 현 복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곤 했었죠.

<송파 세 모녀의 안타까운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부천 세 자매의 상황이 정확히 어떤지는 수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 사건을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송파 세 모녀 자살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제가 보기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복지 관련 행정 시스템은 아직도 엉망이여서 사회적 약자를 보살 필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아직 부족하구요. 이를 개선 및 현상유지할 예산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예산을 지방정부에 떠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더 나아질 수 있고 무엇이 더 개선될 수 있을까요.

복지는 개별 지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 정권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 정권을 지지해줬던 노인계층의 생활고는 또 얼마나 심각한지요.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조차 내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관심이 없다는 반증이에요. 이미 선택적 복지 노선을 취한 것부터 보여주기식 복지 정책이 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일 뿐입니다.

국가의 예산 배정에 있어 복지정책을 우선하는 것은 차지하고서도 그나마 있던 복지정책을 없애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그 많은 예산을 공중과 강바닥에 날려버린 전 정권의 책임은 왜 언급을 하지 않는건가요? 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현재 예산이 없다는 말만 앞세우는 그들은 참 두꺼운 낯짝을 가진 듯 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아직은 우리가 복지정책을 펼 시점이 아니다. 아직은 성장을 더 해야 한다. 라구요. 이 말은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성장을 해야 하는 이유는 보다 나은 복지를 위해서이며 현재보다 더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복지를 통한 내수시장 활성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국가의 양적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인 인적자원이 '출산율 저하'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고 이제 대한민국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경제침체를 어떤 방법으로도 벗어날 수 없음을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걸 조금은 지체시킬 수 있는 방법이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올려야 하는데 현재 국민들의 인식수준은 아이 한명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내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럼 그 비용을 국가에서 대신 대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비용은 단순히 퍼주기식 복지가 아닙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국가입장에서는 꽤 높은 투자대비 회수율을 갖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그렇게 멀리까지 내다보는 시야가 없나 봅니다. 그게 아니면 지금 현재의 어떤 이익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겠지요.

비단, 양육비만을 예로 드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비도 마찬가지이지요. 과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우리나라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고 인적 자원만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인재육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 인재육성에 들어가는 비용을 국가보다 가정에서 더 많이 지출하고 있는 듯 합니다. 대학생 자녀 한명이 있다면 그 부모들은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한명당 한달에 100~150만원 되는 돈을 저축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있나요? 거의 없어요. 그러면 결국 빚을 내거나 그동안 모은 자산을 팔아야 합니다. 중산층이 몰락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육비라고 생각됩니다. 부모가 학비를 대주지 못하면 학생들이 대출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나라가 과연 인력자원을 우선시 하는 나라인지 우리는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투자정책이라고는 실시하는 실패만 하는 자원외교나 토목사업, 부동산 활성화 대책, 대기업의 세금 감면, 무기 구입에 그리 큰 돈을 쓰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출처 : 마이뉴스>

이렇듯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해야 하는 보편적 복지는 국민들을 게을러지게 만드는 포퓰리즘 정책이 절대 아닙니다. 매우 효과적인 투자정책입니다. 이런 장기적인 측면에서 국정운영이 되지 않고 단편적인 토건사업이 오히려 포퓰리즘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투자의 개념을 떠나서 복지는 국가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장치입니다. 한 나라의 국정철학이 돈에 있는지 사람에 있는지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직장이 없다고 굶어야 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을 그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그 개인의 문제보단 국가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요? 가끔 이런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보다 복지가 못한 나라를 예로 들면서 그 사람들보단 행복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네 맞아요. 그런 나라보단 훨씬 낫죠. 그렇다고 만족하고 그냥 살아야 합니까? 타인들이 어떻게 살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시는가요? 함께 잘사는 나라는 구현할 수 없는지요? 최소한 노력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의 탐욕과 그릇된 통치철학에 의해 많은 국민들이 큰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때문에 모든 정책(성장이든 분배든)의 기본 철학은 국민 행복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여야 합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이 없이는 형성될 수 없는 것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국가는 자신의 존재이유인 국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충성과 애국을 강조하는 것만큼 우리 국민들도 정부에게 행복한 삶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국제시장'>

하지만, 송파 세모녀 자살이나 부천 세자매의 자살과 같은 생활고와 관련된 뉴스를 볼 때마다 뉴스에 언급도 되지 못한 이 사회의 수도 없이 많을 세모녀와 세자매들의 삶이 남 일만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 성장보다 분배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