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4년간 신문배달을 했다.
어린나이에 동네 꼬마들끼리 모여 그게 생존을 위한 노력이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것이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동네 아이들이 동시에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 폐달을 굴렸다.
새벽 12시에서 2시쯤 되면 보급소로 신문이 배달되어 온다.
나는 보통 새벽 3시반쯤 일어나 보급소로 향했다. 제일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선배들의 속지와 광고지를 일일이 모든 신문에 끼워넣어야 했다. 혹여 비라도 오는 날이면 신문을 하나하나 비닐봉투에 담는 일도 도맡아 했다. 처음에는 일명 '코스'라고 하는 신문을 배달하는 장소를 익히기가 너무 어려웠다. 몇 번을 돌아봐도 저 집이 우리 신문을 구독하는 곳인지 아닌지 분간하는게 나한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신문을 잘못 배달하거나 아예 안 넣거나 할 때면 다음날 보급소장님께 된통 혼이 나곤 했다. 내가 잘못한 실수를 소장님이 대신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칫 늦잠이라도 잘 적에는 엄청 혼이 났다.
이 신문배달이라는게 생각보다 위험한 직업이다. 새벽길을 달리다보니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고 포악한 개를 만나기도 하며 동네 불량배와 조우를 하기도 한다. 특히, 우천시에는 더욱 그러하다. 신문이 젖는 것도 위험하고 눈 앞 시야가 흐려지는 것도 위험하다. 비록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였기에 오토바이보다는 덜 할 지라도 말이다.
(참조-신문배달의 추억1, 신문배달의 추억2)
그러나 내가 제일 무서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아주 맑디 맑은 밤하늘"이였다.
내가 자란 전북 남원이라는 곳은 아주 청정한 곳이여서 구름이 없다면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가득하다. 이상하게도 그 밤하늘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거대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였는지 아니면 이상한 자연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특히나 북두칠성을 무서워했다. 이것은 아마 책에서 보던 별자리를 설제로 보니 너무 그 크기가 거대했던 것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새벽배달에서 하늘을 의식적으로 보지않고 달렸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별과 하늘, 우주는 언제나 나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주기도 했고 두려움을 주기도 했으며 지금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막상 동경의 대상이 되고나니 대기오염으로 인해 많은 별들을 지금은 보지 못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