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대화

(138)
자취의 추억16 - 막내동생의 뒷꿈치 저희는 그 우애를 따지자면 유비,관우,장비의 싸다구를 3박 4일을 휘갈길수 있는 형제들입니다. 그 중 막내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저희는 3형제입니다) 이녀석 어렸을적부터 무지하게 안씻습니다. 사실 씻는지 안씻는지는 씻는것을 본적이 없으니 뭐라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어느날 막내동생을 아끼는 둘째녀석이 막내를 보면서 외칩니다. "히익!!! 이 드런놈 좀 씻어라... 목에 때 좀 봐라 이 놈아" 그러자 티비를 보던 막내... 평소에 둘째와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절대 질 수 없는 관계로 태어난 것인지는 몰라도 말 한마디를 안집니다. 자신의 목에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둘째의 모욕에 당해서는 안된다는 처절한 몸부림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단발마의 비명을 지릅니다. " 때 아니여!!!!..
로드 킬(Road Kill)을 목격하다. 볼일이 있어 사무실을 나서서 인근 도로 신호등에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중 좌측 길을 따라 시선을 잡아끄는 닭둘기 한마리가 보였다. 그 닭둘기는 뒤뚱뒤뚱 걸으면서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닭둘기는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중앙선까지 진입하고 있었는데 앞 차선에서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어..어.. 저거 치이겠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닭둘기는 로마시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듯이 중앙선을 건너는데... 자동차의 속도가 더 빨랐는지 닭둘기 앞을 씽~하니 지나갔다. 근데 참 이녀석 반응속도 느리다. 차가 지나간 후에야 깜짝 놀라며 방향을 바꾸어 역시 뒤뚱뒤뚱 되돌아가더라. 반대편 차선 1/3지점을 지나는 중 달려오던 차가 있었는데 역시나 반응속도 느리다. 5m 간격까지 올때까지 모르고 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 김대중 대통령님 영면하소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 안 치 환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시고 이 노래 참 많이 불렀었는데... 어찌 그리 가십니까... 아직 선생님이 계셔야 하는데... 정말 어렸을때는 몰랐다. 왜그리도 전라도 사람들은 김대중만을 찾는지.. 다만 그 또한 지역감정의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대학생이 되던때 학생운동을 하기시작하던 시절. 신문,방송..
자취의 추억(외전) - 시작하는 가난한 자취생들을 위한 지침서(하) 자취의 추억(외전) - 시작하는 가난한 자취생들을 위한 지침서(상) 앞 편에서 가난한 자취생들이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서 검토해야할 사항중 '1. House' 즉, 집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식사문제와 기타 생활용품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합니다. 2. Food 자취생을 가장 고달프게 하는 항목입니다. 집을 어렵사리 구했는데 이제 먹을 것에 대한 문제로 자취하는 내내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취생활중 먹을것과 관련된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말그대로 자취 - 스스로 밥을 지어먹음 - 을 하는 경우이죠.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손수 요리를 해먹으려 시작했으나 실제로 식재료를 구입하다보면 돈이 왜이리 많이 들어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취의 추억(외전) - 시작하는 가난한 자취생들을 위한 지침서(상) 혹시 자취를 해야만하는 상황이십니까? 혹시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해 더 열악한 상황으로 이동하십니까? 혹시 무일푼으로 바닥부터 생활해보고자 하십니까? 그런 당신을 위해 아니 가난한 자취생들을 위해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Beginning Manual'을 소개합니다. 여기서는 부유한자를 제외하고(저는 이런 상태를 경험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가진것 없이 새로운 환경에서 자취를 해야만하는 절대절명의 상황에 처한 당신을 위한 글이며,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기본으로 한) 시작하는 방법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1. House 자취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가장먼저 생각하는 것이 '방'을 구하는 것일 겁니다.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가장 까다롭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생활공간으로써 현실적인 측면에 따라 가장 변동..
장사의 원리를 깨달았던 21살 - 설득의 심리학, 벌꿀 편 장사의 원리를 깨달았던 21살 - 칼라병아리 편 앞의 다른 포스팅에서 얘기했던 칼라병아리 판매는 그렇게 실패로 끝났었다. 내 생애 최초의 장사는 단 만 오천원을 벌고 끝나버렸고 그마저도 교통비, 식비등을 제하고 나면 인건비도 안나오는 적자사업이였다. 그리고 얼마뒤 별로 안친하게 지내고 있던 두살위의 형님과 함께 지리산을 올랐다. 벌꿀을 팔기 위해서였다. 난 순전히 보조자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 형님은 작은 1톤짜리 포터에 벌꿀을 담아 지리산에 관광온 외지인에게 팔고 있었다. 그 형님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작은 단지에 '꿀물 30% + 설탕물 65% + 정체를 알수없는 물질 5%'를 섞어서 '산지채집벌꿀, 아미노산 함유, 원기회복' 이런 글씨를 써서 포토의 뒤에걸어놓았다. 꼭 장사치..
장사의 원리를 깨달았던 21살 때는 1998년 4월. 학교를 휴학하고 9월에 예정된 군입대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군입대전에 그냥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보낼 수 없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휴학을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물론 휴학할 당시에는 무엇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휴학하고 나니 여러가지 상황이 나의 계획을 훼방하고 있었다. 당시 자취를 하고 있을 때였으므로(본인의 글 '자취의 추억' 보다 한참 앞선 때이다. 이때도 연화마을에서 자취를 했었고 생활은 처절할정도로 힘들었다. 최초의 자취시절) 일단 돈을 벌자는 생각에 구인광고를 뒤적였다. 그 시절은 IMF가 터지고 얼마 안될 때여서 일자리 자체가 희귀했다. 대학1학년때 난 보통 식당(고기집)에서 알바를 했었다. 역시나 그런종류를 찾고 있었으나 자리가 있을리..
신문배달의 추억 2 ◎ 슬프고 짜증났던 상황 1. 신문배달을 하면서 가장 짜증나는 때가 태풍이 불때였다. 비오는 것도 싫었지만 태풍은 강풍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로인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신문을 접어서 비닐에 껴놓은채로 배달하게 되는데 모든 신문을 그렇게 하진 않는다. 비로 인해 꼭 신문이 젖을 수 밖에 없는 집에만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그냥 자전거 바구니에 신문을 통채로 비닐로 덮은채로 담는다. (아파트나 실내로 배달하는 곳이 그러하다) 어느 태풍날, 거의 배달이 완료되고 20여부정도 남았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경향신문 보급소에 배달할 때였다. (각 신문 보급소마다 다른 신문들이 배달되곤 한다.) 엄청난 강풍이 불고 있었고 난 자전거를 그 보급소 앞에 세워놓고 신문 한부를 들고 보..